일곱 인의 재앙 (계 6:1-17)
오늘 본문에는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을 받으신 예수님이 이 봉인을 하나씩 떼실 때마다 일어나는 심판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곱 인의 재앙은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기록한 6장부터 19장까지의 말씀이 7년 환난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제는 일곱 봉인의 재앙들 가운데 첫 번째부터 6번째 봉인이 떼어질 일어나는 재앙들을 가운데 첫 번째부터 6번째 봉인이 떼어질 일어나는 재앙들을 소개한 본문의 말씀들을 강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때에](1절 상)
본 절과 다음 절은 첫째 인에 해당됩니다. '어린양이... 그때에'는 마지막 인을 뗄 때까지(8:1)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문구입니다(3,5,7,9,12절). 이는 그 어떤 인간도 뗄 수 없는 (5:3) 종말의 비밀을 어린양 자신이 여심으로 어린양 께서 심판을 주관하시는 주체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1절 하)
'우렛소리같이'는 하늘의 소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4:5; 요12:29). 한편 '오라'는 말 탄 자에게 명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네 생물의 '오라'는 초청에 말 탄 자가 등장하여 즉각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2절 상)
요한이 첫 번째 인을 떼고 난 후에 본 환상은 흰 말의 모습입니다. 이는 슥6:1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스가랴서에서는 색깔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반면 본서에서는 말 탄 자와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흰색은 승리와 정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땅에 심판을 위한 재앙을 내리려는 의도를 암시합니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2절 중)
본 절에서 흰 말이 나오고 그 탄자가 활을 가지며 승리를 상징하는 면류관을 가진 것으로 보아 말 탄 자가 승리자요 정복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 것은 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을 의미하는 동시에 장차 나타나게 될 어떤 정복자를 의미합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2절 하)
'이기고'는 문법상 현재 능동태 분사로 심판의 현재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기려고'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문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3절)
둘째 인은 문자적으로 '그 두 번째 그 인봉'이란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첫 번째 인을 단지 '일곱 인 중에 하나'라고 언급한 것과는 달리 시간적 순서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비록 둘째 인을 뗀 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처음 인을 뗀 어린양이 둘째 인도 떼었음이 분명합니다.
4. [이에 다른 붉은 나오더라](4절 상)
'붉은 말'에서 붉은색은 전쟁 혹은 살육을 암시합니다.(12:3; 왕하 3:22,23; 슥1:8; 6:2).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4절 중)
본문은 말탄 자의 사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붉은말'이 상징하는 전쟁이나 살육의 의미와 일치합니다. '허락을 받아'는 무서운 모든 전쟁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의도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부정사 구문으로 '화평을 제거하기 위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붉은 말을 탄자의 사명이 전쟁이나 살육을 통해서 화평이 사라지게 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4절 하)
'서로 죽이게 하고'는 미래 능동태로 철저하게 끝까지 전쟁을 완수할 것을 묘사합니다. 한편 '큰 칼을 받았더라'는 '큰 무기'를 받은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전쟁이나 살육을 암시합니다.
이 전쟁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입니다.
(1) 혹자는 '종교적인 핍박'으로 해석합니다 (2) 혹자는 적그리스도에 대항한 전쟁으로 해석합니다 (3) 혹자는 전쟁을 통한 복음의 전파로 해석합니다. (4) 혹자는 로마의 내란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견해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여하튼 붉은 말의 사명은 전쟁과 살육을 통해서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5절)
'검은색'은 슬픔과 기근을 나타내는 것으로 셋째 인의 재앙은 기근을 상징합니다(렘 4:27,28). 한편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는 말은 전쟁 후에 식량을 저울에 달아 배급하는 절박한 기근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유혈의 전쟁이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것입니다(겔 4:9).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6절 상)
'나는 듯하는 음성을' 이것은 어떤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접속사로 본서의 독특한 문체 중의 하나입니다. 이 음성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입니다. 어린양의 음성이라고 주장과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주장입니다.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돼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6절 중)
'한 데나리온'은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마 20:2). 또한 '되'는 건강한 남자의 하루 식량을 나타내는 고대 단위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러한 가격은 당시의 보통 시세의 12배 또는 최고 16배가 되는 가격으로 전쟁과 살육의 재앙이 있은 후 초래된 심각한 기근의 상태를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마 24:7).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말라 하더라”(6절 하)
'감람유'와 '포도주'를 사치품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으로 보아(신 7:13; 11:14; 호 2:8,22) 본문은 기근의 한계성을 나타낸다고 이해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기근의 피해가 심각하게 증대되고 있긴 하나 본격적인 재앙은 아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7절)
'청황색'은 창백한 모습을 암시하며, 온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8.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8절 상)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란 표현은 의인화된 표현으로 근본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눅21:10,11)과 에스겔의 예언과도 부합되는 것으로(겔 14:21), 흔히 전쟁과 기근에 이어 나타나는 재앙인 것입니다.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8절 중).
'땅 사분 일'은 땅 위의 전면적인 환난이 일어나되 그 가운데서 사분의 일이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한정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권세를 얻어'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땅의 사분의 일을 통제하는 막강한 것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8절 하)
넷째 인으로 인한 환난의 구체적인 방편은 겔 14:21을 반영한 것으로 앞서 언급된 세인에 의해 실행된 환난보다 강한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검'은 '전쟁'을 상징하며, '흉년'은 '기근'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죽음의 특수한 형태인 '온역'을 말하며(2:23; 겔 14:21), '짐승으로 인한 죽음'은 전쟁 이후에 나타난 황폐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사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9절 상).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에 대한 묘사입니다(1:9). 공관복음에서는 복음 증거로 인한 순교가 여로 모로 예고되었으나(마 24:9,10; 막 13:9-13; 눅21:12-18) 본문에서는 이미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 순교자들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13:15),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18:24)로서 일반적으로 역사상에 있는 순교 사건들 가운데 죽임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해서 죽게 될 순교자들을 암시합니다. 한편 '영혼들'은 순교당한 '목숨'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들이 비록 순교를 당했으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인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단 아래 있어”(9절 하)
본절은 하늘에 있는 제단으로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본서를 통해 하늘의 제단이 여러 번 언급될 뿐 아니라 땅의 제단은 하늘 제단의 모형으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출 25:9; 민 8:4; 히 9:23). 한편 '제단 아래 있어'라는 표현은 순교자들의 순교가 하나님께 드린 산 제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적대한 자들의 흉측한 박해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복음을 위해 종말에 교회가 순교의 각오를 새롭게 갖도록 합니다.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10절 상)
'거룩하고 참되신'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교자들의 확신과 신뢰를 시사합니다. 한편 '대주재여'의 헬라어 '호 데스포테스'는 원래 종이 주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절재적 권력과 소유권을 가진 자에 대한 호칭입니다(딤전 6:2; 딛2:9).이러한 호칭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눅2:29; 행4:24) 그리스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벧후 2:1; 유 1:4). 본문에 사용된 이 칭호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하나님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10절 하)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세상에 거하는 자들입니다(3:10; 11:10; 요 8:23). 이것은 개인적인 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복의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롬 12:19). 본문에 나타난 신원 역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핍박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을 의미합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입니다(눅23:34; 롬 12:19).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11절 상)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는 것은 영생과 승리를 보장하심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11절 중).
'잠시 동안'은 시간의 연속을 나타내는 목적격으로 동일한 사건의 연장 속에서의 휴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복수를 신원하는 순교자들의 울부짖음으로부터의 휴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14:13). 한편 '쉬되'에 대하여서는 '잠시 동안'과 연결 지어 '탄원하기를 쉬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천상계의 축복 가운데 쉼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에 대한 견해는 이들 모두가 동일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순교한 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11절 중)
'차기까지' 이 본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교자들의 수가 채워져야 종말이 온다는 숫적 개념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교회가 더 많은 순교를 각오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시사하는 것입니다(7:14; 롬 11:25).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12절 상)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자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자연의 질서가 대혼란에 빠지며 마지막 날이 임박했음을 보여줍니다. '큰 지진'에 대한 경고는 종말의 현상 중 하나로 이미 예시되었고 하나님의 형벌로도 나타납니다(사 2:19). 한편 여섯째 인을 뗀 이후의 자연의 혼란에 대한 해석은 마 24장과 관련하여 사실적으로 해석함이 옳습니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12절 하)
'총담같이' 이 말씀은 검은색 염소 털로 만든 옷으로 슬픔을 표시하는 데 사용되곤 하였습니다(사 50:3). 해가 자신의 빛을 상실하고 슬픔을 상징하는 총담같이 검게 되었다는 것과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은 종말의 현상을 묵시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우주적 대이변의 심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사 13:10; 렘 4:23; 겔 32:7,8; 욜 2:31; 3:15; 미 3:6; 마 24:29).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13)
본문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겨울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무화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선 과실'은 잎이 나오기 전에 겨울에 맺히는 푸른 무화과로 약한 바람에도 모두 떨어지는 설익은 무화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선 과실과 같이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구약 성경에서도 비슷한 예가 제시되고 있습니다(사 34:4; 나 3:12).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14절 상)
'떠나가고'는 말지 않은 두루마리 종이를 반으로 자르면 한쪽으로 말리는 현상을 나타냅니다(사 34:4). 이는 종말에 있을 하늘의 대변동에 대한 비유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엄중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14절 하)
본문은 전혀 움직임이 없던 산과 섬들도 지각의 변동으로 요동하는 현상을 묘사합니다(렘 4:24). 이러한 종말의 양상은 상징적이든 축자적이든 큰 재앙과 고통을 나타냅니다. 본절은 종말의 대변동을 맞아 각 계층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즉 일곱 계급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은 예외 없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시사합니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15)
1) “땅의 임금들과”
'땅의'라는 언급은 인간들이 처한 모습이 불신앙 상태였음을 묘사해 준다. 한편 '임금들'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2) “왕족들과 장군들과”
'왕족들'은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막 6:21e). 한편 '장군들'은 보병 약 600명을 지휘하는 '군단의 지휘관'으로(막 6:21) 군대의 권력을 가진 자들을 지칭합니다.
3)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본문은 앞서 언급된 권력을 지닌 지배층과는 달리 자기만족적이며,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력한 계층을 가리킵니다.
4)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각 종과 자주자'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인권이나 자유가 없는 계층과 대개 상업에 종사하는 일반 서민을 가리킵니다.
설사 이들이 지배 계급이나 경제적 부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의 종이라면 천지가 대변동하는 종말에는 동일하게 공포와 심판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는 종말에 나타날 고통과 심판을 피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심판의 괴로움을 암시합니다.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16)
종말에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비참한 재앙을 가려 달라고 하는 요구는 종말의 재앙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호 10:8). 한편 '우리 위에 떨어져' 이 구절은 부정 과거 명령문으로 '지금 당장 떨어져라'는 긴급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10절의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신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무생물들에게 호소하는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는 심판의 날에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줍니다(창 3:8). 한편 '어린양의 진노'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본서에서 유일하게 언급됩니다. 어린양이 상징하는 온유와 진노가 역설적으로 결합되었다 하여 혹자는 '하나님의 진노'(11:18; 14:10,19; 15:7; 16:1,19; 19:15)를 대신해서 후대에 삽입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시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습니다. 어린양 은 희생과 온유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더 깊고 영구적인 분노를 나타내는 '오르게스'와 연결시킨 것은 철저한 악의 종말을 극명하게 나타냅니다.(마 25:41).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오 하더라](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그들의 진노의'이 구절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경 여러 곳에서 동격으로 언급됩니다(살전 3:11; 살후 2:16). 이러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는 역사적 사실이며 동시에 종말론적 심판으로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악에 대한 보응입니다.
한편 '큰 날이'는 악의 무리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공포로 인해서 외쳐진 용어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날임을 시사함과 동시에(욜 2:11; 습 1:14; 유 1;6) 하나님의 진노의 범위가 전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누가 능히 서리오”
본문은 심판으로 인한 멸망이 너무 엄청나므로 그 어떤 죄인도 피할 길 없이 무력함을 나타냅니다(말 3:2). 이것은 그들이 피할 길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여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7년 대환난은 어린양의 진노가 내려지는 “진노의 큰 날”(17)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지만(고후 6:2), 이 은혜를 구원의 기회로 삶지 않는 자들에게는 일곱 인과 나팔과 대접으로 상징되는 어린양의 진노가 내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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