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된 자(롬 5:9-11)
1.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9)
6절에서는 '우리가 연약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하셨고 8절에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라고 하였다.
이제 본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1) “그러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주로 '그런즉' 또는 '그러므로'라고 개역 성경에 번역되었다(1절;4:9, 10, 16, 22).
2)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4:25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칭의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나 본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대속에 대한 설명이다.
즉 4:25는 부활을 통해 '생명을 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가 칭의의 근원이라는 진술이며, 본절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이 칭의의 근거라는 진술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 피를 인하여'라는 표현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문구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의 피 안에서'이다.
여기서 바울이 전치사 '디아'를 사용하지 않고 '엔'을 사용하였는데 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아'는 '.... 을 통하여'(through)라는 방법, 수단의 의미를 지니나 '엔'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상태, 조건'을 나타내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
특히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등의 독특한 표현을 사용할 때 '디아'를 썼다.
본절에서 '디아'의 사용은,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대속적 능력이 있어 죄인들을 의롭게 하는 근원이 될 뿐만 아니라 한번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을 계속 통치하시는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함축한다.
한편 본절의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은 1절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라는 표현과 비교가 된다.
두 구절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즉 1절에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음에 있어 인간 편의 책임과 의무로서의 믿음이 강조되었고 본절에서는 의인의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대속적 피 흘림이 강조된 것이다.
3)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한 진노하심에서의 구원이 칭의를 위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의 '칭의'는 재판관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아 벌을 면하게 되는 법정적인 차원의 '의'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그리스도가 죄인 된 인간과 진노하시는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 뜨리는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한편 '더욱'은 '훨씬 더', '더욱더'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피 흘림이 칭의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는 뜻이다.
2.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10)
1)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이 표현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6절), 또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8절)란 의미보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 형성되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보다 명확하고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심을 이루는 단어 '원수'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하나님을 향해 적개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능동적 의미를 갖는다는 견해와 '하나님이 원수로 여기는 사람'이라는 수동적 의미를 갖는다는 견해가 있다.
두 가지 견해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모두 일면 타당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을 주장한다면 다른 일면을 소홀히 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원수'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범죄성의 측면에서만 이해한다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놓쳐버리게 되며, 또한 '원수'를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하심에서만 이해한다면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의 견해를 모두 포괄해야 할 것이다.
2)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이 화목(和睦)될 수 있었던 근거는 물론 '칭의'이다.
'칭의'가 없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은 있을 수 없다.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의 상태에 머무르는 자에게는 진노의 채찍을 내리시나,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리신다.
바울이 이처럼 화목을 강조하는 것은 '화목' 자체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후 5:18에서 언급하기를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할 때에, 이 직책이란 물론 죄악 된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는 제사장적 직분(벧전 2:9)이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전하는 직책'이다.
3)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상반 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화목에 대하여 진술한 반면, 본 구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화목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죽음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인 된 인간의 구원과 화목에 있어 더욱 확실한 보증이 됨을 역설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1) 그의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에게 부활을 확증시켜 주셨으며, (2) 그의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공급되므로 성도는 그 생명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때문이다.
3.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11)
1)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을 얻게 하신'이란 표현은 지금까지 바울 자신이 설명했던 '칭의', '진노하심에서의 구원', 그리고 '구원'을 포함하는 의미로 해석해도 별 무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서의 '즐거워하다'란 말은 '자랑하면서 즐거워하다'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면 본절에서 의미하는 '즐거움'은 구체적으로 어떤 즐거움인가? 이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구속(救贖)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즐거움이다.
둘째로, 영원한 소망을 바라는 즐거움이다.
셋째는, 참된 즐거움이다.
현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은 일시적이요 가변적이며 또한 거짓되고 기만적이나 그 근원과 이유를 하나님께 둔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이요 보증이 있는 즐거움이기에 참되다.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요 축복 그 자체이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써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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