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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강해

로마서 4장 21-25절: 약속하신 의

by 보석상자 2022. 7. 23.

약속하신 의(롬 4:21-25)

 

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21)

 

1) “약속하신 그것”

 

본문 구절에 언급된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17절)는 것과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18절)고 한 것이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소망과 확신에 의하여 얻어낸 보증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보여 주신 하나님의 전능성과 신실하심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확신보다 더 확실한 것은 그분의 약속이다. 왜냐하면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전능함과 신실함을 나타내신 목적 있는 계획하심이기 때문이다.

 

2)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이 말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여호와 하나님'(창 18:14)에 대한 확신이며 또한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창 18:19)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기도 하다.

 

본 구절에 대하여 혹자는 본 구절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벽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라고 진술하기도 한다.

 

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22)

 

본 구절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그러므로'(디오) 다음에

'카이'가 언급되어 있다.

 

이 '카이'는 일반적으로 접속사로 사용되어 '그리고'를 의미하지만 본문에서는 '또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9절에서 언급했던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라는 말씀을 다시 반복하면서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다.

 

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23)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실은 동시성과 통시성을 동시에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그 원리는 아브라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 모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성경에서의 증거로는 시 102:18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바울의 진술은 '당신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만 적용되며 모세 이후부터는 율법만이 적용될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다.

 

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24)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본 구절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본 구절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열려 있음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유대인의 특권을 부인하고 있는 23절의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라는 내용과 호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논리를 '믿음의 내용'으로 바꾸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화제를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언급했던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결국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는 것과 신약 시대에 성도가 예수를 믿는 것은 내용상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실현될 '약속'에 대한 것인 반면, 신약 시대 성도의 믿음은 성취된 '약속'에 대한 것이다.

 

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25)

 

본 구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성도에게 적용시키면서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두 구절을 대조시키고 있다.

즉 '우리 범죄함'과 '우리를 의롭다하심'이 대조되어 있고,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와 '위하여 살아나셨으니라'가 대조되어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 줌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한 대속적인 죽음을 의미하며, 우리를 위하여 살아나심은 대속의 결과인 '의'를 보증하고 선포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바울은 24절에서 믿음의 내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에 대하여 언급했던 것을 성도들에게 다시 적용시키는 논리적 순서를 밟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이사야서 53:1-9과 같이 구약 시대에서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어 유대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증명되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해 구약 성경을 인용하면서까지 굳이 증명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내용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을 위해 더 유익한 것으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5장에서 8장까지 줄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 진술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