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21:24-22:5)
요한계시록 21장 24절부터 22장 5절까지 말씀을 통해 새 예루살렘 성 내부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24절)
본절은 사 60:1-11을 반영합니다. '만국과 땅의 왕들'에 대한 견해는 어린양을 따르던 구속받은 자들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비록 본서에서 '만국'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적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할지라도(17:2) 세상의 만국을 속여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했던 옛 뱀은 이미 패배하였고(12:9)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20:2, 3) 본절의 만국과 땅의 왕들은 짐승과 바벨론을 대항하고 하나님과 어린양 이신 그리스도께 신실하게 충성하여 구속받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1:5;11:2, 18;15:2).
한편 '빛'은 앞 절에서 언급된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의 광채를 의미합니다(23절).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25절)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는 사 60:11을 반영한 것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생활이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완전하게 안전함과 동시에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한편 '밤이 없음이라'는 상반절에서 '낮'만 언급된 이유입니다. 본절의 '밤이 없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첫 창조의 때와 같이 자연의 빛에 의존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의 광채가 비취는 세계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23절).
둘째는,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밤이나 어두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분리된 것을 나타내므로 '밤이 없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임재해 계심을 의미합니다.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26절)
본절은 24절의 반복입니다.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27절)
“무엇이든지...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23절과 26절에서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만국과 땅의 왕들에 대해서 언급한 반면에 본절에서는 들어오지 못하는 자에 대해 세 부류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이 배척당하는 것은 그들이 적그리스도의 품성과 생활 방식을 좇아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인데(8절;17:4). 그 세 가지 부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속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상 숭배자들을 가리킵니다(8절;22:15).
두번째는 “가증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상 숭배자나 배교자들을 가리킵니다(17:4;단 9:27;12:11;마 24:15).
세번째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이는 본서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나타내며 거짓 선지자를 암시하기도 합니다(2:2;3:9;14:5).
다음 구절입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하십니다.
본문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어린양의 생명 책'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근거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공로임을 암시합니다(3:5).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하여 믿음을 소유하고 영생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성품과 뜻에 일치하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들어갑니다.
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1절)
본 구절은 '생명수의 강'은 창 2장과 겔 47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에 따르면 물은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와 바다 곧 사해에 도달하여 사해의 죽은 물에 생명을 부여하여 생물이 살 수 있도록 합니다(겔 47:1-12).
이러한 배경을 가진 '생명수의 강'은 영생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한편 에스겔서 에서의 물은 성전 문지방에서 비롯되나 본절의 생명수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임과 동시에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시사합니다(21:22).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2절)
1)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생명수가 흐르는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는데, 이 생명나무는 두 가지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따 먹을 수 없게 된 생명나무를 가리킵니다(창 3:22).
이 경우 에덴동산에서는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그것이 회복되어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둘째, 에스겔의 환상에 보인 성전에서 나와 흐르는 강가에 있는 각종 실과나무를 가리킵니다(겔 47:12).
이러한 두 가지 배경을 가진 생명나무는 앞절의 생명수와 같이 영생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2)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본문은 겔 47;12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는 문자적인 의미의 열매가 풍성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생명력이 왕성하여 영생을 의미하는 실과가 풍성함을 시사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해와 달이 없고 대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빛이 되시므로 달마다 지속적으로 열리는 실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다'는 겔 47:12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강조하는 반면 본문에서는 잎사귀 자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치유할 수 있는 잎사귀가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새 예루살렘에 질병과 고통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에 참여하면 전혀 고통이나 부족함이나 질병이 없는 완전함을 누리는 것을 시사합니다.
즉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여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났음을 암시합니다(마 11:29;갈 2:19).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3절)
1)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저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저주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창 3:14-20의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었음을 나타내며 동시에 슥 14:11의 성취입니다.
저주 상태에서 회복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저주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이제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함께 임재해 주심으로 그 관계가 회복되고 더 이상 저주를 받지 않게 됩니다.
2)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가 가리키는 대상은 하나님이며 어린양이십니다. '그'는 문법상 단수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하나의 단일체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섬기며'는 예배 행위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는 모든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예배하며 경배함을 시사합니다.
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4절)
본절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을 곧 죽음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모세에게도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출 33:20, 23).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대면한 것이 곧 하나님을 대면한 것이었습니다(요 14:7, 9;17:3).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됩니다.
한편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짐승의 표를 이마에 받은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13:16). 여기서 이마에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 예루살렘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소유가 되며 그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3:12).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5절)
1)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본문은 21:23, 25의 반복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밤이 존재하지 않는 낮이 계속됩니다(슥 14:7). 왜냐하면 그곳을 등불이나 햇빛에 의해서 빛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하나님 자신이 그곳의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영원한 영과의 빛이 비취심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2)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궁극적인 축복입니다. 3:21에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온전한 자유와 권위를 갖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마 20:25-27).
결론입니다.
땅의 왕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가게 될 새 예루살렘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치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 강이 흘러 이 강물이 닿는 곳마다 달마다 12가지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자랄 것이라 하십니다.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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