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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강해

마태복음 25장 14-30: 달란트의 비유

by 보석상자 2022. 6. 8.

달란트의 비유 (마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14)

 

1) “또”

 

이 등위 접속사는 새롭게 시작되는 달란트 비유가 바로 설명한 열 처녀 비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즉 종말적 심판에 관한 열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내용이 같은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2)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이 구절은 막 13:34의 문장과 같은 형식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사람'은 같은 평행 비유인 눅19:12-27을 보면 왕위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이 땅에 성육신 하셨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할 일을 맡기시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오실 것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그 종들을 불러”

 

여기 '종들'은 그 주인의 전적인 소유였으나, 여기서는 하나의 인격적 친근감을 주는 그야말로 주인과 동등한 위치로서의 신분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 '종들'은 여전히 주인의 권위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한편 이'종들'은 상징적으로 주의 승천 이래로 당신의 교회를 책임질 복음 사역자들 및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모든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4)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고대 사회에서 종들은 그들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종들에게 자기의 동업자처럼 각각 소유를 나누어 줍니다.

 

한편 여기서 '소유'란 '재산', '소유물'이라는 뜻이며 본문에서는 주로 '돈'을 가리킵니다. 이 '돈'은 그들 각자에게 적당하게 '맡겨'질 것이지만 여전히 그것에의 원소유권은 주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즉 비록 '종들'의 노력과 지혜로 많은 이윤(이윤)을 남긴다 하더라도 그것의 법적 소

유권은 여전히 주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15)

 

1) “각각 그 재능대로”

 

이 말은 '자기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인은 종들에게, 소유를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였음을 말해 주는데 이것은 불공평에 의한 공평의 원리를 실현하시는 그분의 지혜를 반영합니다(민 7:4-9).

 

이러한 재능에 따른 배분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인은 맡김을 받은 청지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소유 곧 물질적 소유뿐 아니라 성격, 지식, 교육, 의지, 환경 등은 근본적으로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서 최선을 다해 잘 관리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2)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에 따라 소유가 맡겨졌다는 것은 저마다 고유의 인격과 역할이 있다는 말이고, 또한 그것은 각각 소중하고 존귀한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의 개성과 창조적 능력은 다양하지만 그것은 각각 독특하게 소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각자의 재능에 따라 적합한 소유가 맡겨졌다는 믿음은 각각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그 일을 맡긴 주인에 대한 충성의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2)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달란트'라는 말은 구약시대에는 무게의 단위로 쓰였었는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무게와 화폐의 단위로 동시에 쓰였습니다.

 

이 달란트를 화폐 단위로 취급했을 때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치가 됩니다(1 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품삯에 해당). 이것은 누가 19:11-1에 언급된 '므나'(1 므나 = 약 100 데나리온)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편 본문의 비유를 통해 '달란트'는 보통 상징적 의미로 '재능'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각자의 독특한 재능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인 것입니다.

 

3) “떠났더니”

 

주인은 자신의 권위와 지혜로써 분배를 마친 후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자기 길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주인의 그 종들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 행동인 동시에 그 종들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18)

 

1)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돈을 땅에 파묻어 두는 것은 그 당시의 돈을 보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즉 13:44에서 천국 비유를 말할 때 '밭에 감추어진 보배'라고 묘사하는 바와 같이 땅 속 보관은 당시 안전하게 재산을 보관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앞서 이윤을 남기기 위하여 위험을 안고 장사를 한 두 종에 대비시켜 모험을 두려워하는 안전제일 주의의 소심한 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로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적극적인 범죄나 사취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1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고의로 그 재능을 묵혀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그는 주인을 위한 적극적 충성과 봉사를 등한히 한 것입니다. 또한 그의 불충한 죄의 동기를 언급하자면 적어도 그는 상대적 빈곤 의식 때문에 주인이 맡긴 '1 달란트'의 가치를 무시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19)

 

1) “오랜 후”

 

여기서도 종말적 심판의 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이 표현은 5절과 24:48의 '더디 오다'라는 표현과 같은 맥락에서 쓰였습니다. 물론 이 같은 '오랜 후'라는 시간적 감각은 순전히 기다며 인내해야 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된 표현인 것입니다.

 

2) “주인이 들어와”

 

이 말은 '너희 주가 임하다'(24:42), '인자가 오다'(24:44), '주인이 오다'(24:46)라는 표현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3) “저희와 회계할 새”

 

18:23에서와 같이 종말적 심판을 상업적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상업적 용어는 종의 지상에서의 사역을 장사로 비유하였기 때문에 더욱 돋보입니다. 실로 심판과 재림의 주께서는 종말의 심판 때에 지상에 거하는 모든 종들의 사역 결과를 놓고 회계하실 것입니다(고후 5:10 ; 계 20:11-15).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0)

 

1)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가 활용하여 두 배의 소득을 올린 그 소유의 출처가 주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의식하며 성실히 일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소유의 어느 하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겸손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2)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이는 ‘내가’라는 말이 강조되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단지 주인의 맡긴 바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종이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일 뿐입니다(고전 15:58).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 하고](21)

 

1)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더 이상의 칭찬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극진한 주인의 칭찬인 것입니다. 특별히 '잘하였도다'는 종의 지난 노력에 대한 주인의 다함없는 만족과 인정의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종'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그 종의 온 인격이 무흠 하거나 완전하다는 뜻이기보다 그 주인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이 구절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림을 받은 그 이후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말은 역시 주인의 관심, 즉 회계의 내용이 투자에 대한 이윤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충성하는 자세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주인이 맡긴 5 달란트는 상당히 많은 액수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관점에서는 아주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여하튼 종말적 심판의 때에 성도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일을 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에 있지 않고, 매사에 얼마나 성실했는지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이 구절은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돌아가는 보상 내용입니다. 물론 이 보상은 주인의 회계 이후에 주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현세적이기보다는 내세적인 것이 분명하며, 또 그 보상이 돈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 명한 것은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가 더욱 신뢰감으로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4)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

 

여기서 주인의 '즐거움'은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1)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10절) 주인이 와서 벌이는 천국 잔치로 볼 수 있습니다(계 19:9). 따라서 이 견해를 따르자면 우선 그 종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그 주인의 초대를 받을 만큼의 신분 변화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천국은 잔치와 같은 축제라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2) 또 '즐거움'은 주의 영광스러운 현현이 제공하는 넘치는 기쁨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즉 충성된 자로 인정된 사람은 주의 영광에 참예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뜻입니다(시 16:11).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24)

 

1)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주인이 주관하는 회계의 현장에는 충성된 자이든 불충분한 자이든 모두가 나아와 주인의 판결에 응해야 한다(고후 5:10). 한편 여기 '한 달란트 받았던 자'의 시재가 완료 능동태 분사로서 아직 그에게 '한 달란트'만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2)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여기 '굳은'이라는 말은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칠다'는 뜻으로 종이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세워 결국 자신의 불성실과 직무 유기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찾으려 한 것입니다. 그는 주인의 인격을 매도하는 더 큰 죄를 주인 앞에서 범하였습니다.

 

3)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본 구절에서 주인을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불로 소득을 얻는 파렴치한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비난 속에는 자신이 다른 두 종들보다 훨씬 적은 양을 받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은근한 화를 분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4)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이는 추수한 곡식을 키질을 하여 겨를 헤쳐서 곡식을 모으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좋은 주인을, 키질하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알곡(재산)을 모으려고 하는 불로 소득자로 비난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주인을, '굳은 사람', '심지도 않고 거두는 사람', '헤치지 않고 모으는 사람' 등으로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는 그 비난이 한 달란트를 받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인 앞에 나온 게으른 종 자신에 대한 묘사인 것입니다.

 

5) “내가 알았으므로”

 

이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아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실로 그는 자신의 왜곡된 판단을 근거로 주인의 품격을 극도로 모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25)

 

1) “두려워하여”

 

이 두려움은 주인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즉 너무 엄격한 주인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이 장사를 하다가 실패하여 본전도 돌려주지 못할 때 엄격한 주인에게 당할 벌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2)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종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돈을 보관한 것이다(18절). 평행 본문인 눅 19:20에서는 수건에 싸 두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통점은 두 표현 모두 맡겨진 돈을 아무 일에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여기서 게으른 종이 무엇을 하여 모험을 감행할 의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3)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자기가 주인의 원금에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고 잘 보존해왔다는 뜻이지만, 실상은 '내 할 바를 다했으니 당신은 내게 아무런 꾸중도 할 수 없습니다'는 뜻의 무례하고도 원망 섞인 불평이었습니다.

 

즉 주인이 자기에게 맡겨준 것을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이 보관을 위해 달란트를 맡긴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실히 활용하여 그에 따른 이윤을 남기라고 맡겼음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6)

 

1) “악하고 게으른 종아”

 

여기서 '악하고'는 '무가치한', '악독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게으른'은 '지체하다', '둔하다'의 뜻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주인의 의도에는 전혀 무신경하고 자기 안일에만 심취하여 결국 주인에게 해가 된 무익하고 무가치한 종에 대한 묘사입니다.

 

2)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구절은 앞서 종이 주인에게 변명한 내용에 대해 반문하는 것입니다(24절). 이 반문의 의도는 주인인 자기 자신이 절대로 부도덕한 사람이 아님을 밝히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게으른 종에게 그렇게 반문함으로써 도리어 그 내용이 종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입니다. 즉 이 문장을 끊지 않고 계속 연장시켜 본다면, '그렇게 악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는 말이 나을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 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27)

 

1) “그러면 네가 마땅히”

 

이 구절은 앞서 게으른 종이 한 변명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종의 변명대로 주인이 매정할 뿐만 아니라 원금을 손해 볼까 해서 그것을 이용하기가 힘들었다면 적어도 안전하고도 손쉬운 방법으로 이윤을 불릴 수 있는 일이 또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 것입니다.

 

2) “취리 하는 자들”

 

취리하는 자는 돈을 맡아 보관하면서 이자를 주거나 수수료를 받고 돈을 교환해 주는 환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은행이나 돈놀이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돈놀이가 금지되었고(신 23:19), 다만 이방인과의 거래에만 인정되었습니다(신 23:20).

 

3) “변리”

 

이 뜻은 원래 '이자'로서 여기서는 높은 이윤 곧 고리대금을 가리킵니다. 한편 이 단어는 본전(本錢)에 이자가 증식하는 대금업을 연상케 합니다. 여기서는 부당한 이익이나 억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통상적 관례에 의한 이자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변리에 관한 구약의 율법을 찬성하시거나 폐기하셨다는 이론을 전개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자놀이에 대한 도덕성 여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당신의 선한 의지를 설명하실 목적으로 융통성 있게 세상에 있는 현상들을 활용하여 설명하셨을 뿐인 것입니다(눅 16:1-9).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28)

 

1)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본 구절은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물리적 징계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은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어진 보상(21절)에 극한 대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더 큰 것을 맡기면서 주인과 종의 관계가 더욱 깊은 신뢰감으로 형성되는 착한 종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주인과 종의 관계는 악화되고 그 모습은 더욱 처참하게 된 것입니다.

 

2)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하나님의 계획과 거룩한 사역은 인간의 불성실에 의해 훼손되지 않습니다. 비록 게으른 자에 의해 조금 지연되었다 하더라도 당신이 정하신 하나님의 때에, 당신이 정한 목적에 따라 당신의 일을 맡을만한 자를 통해 끝내 성취하시고야 마십니다.

 

한편 열 달란트를 맡은 자는 주어진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던 자로서, 결국 주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를 활용하면 할수록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이러한 격언 구절은 막 4:25에서도 사용되고 13:12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됩니다.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달란트 비유와는 전혀 다른 내용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독립적으로 전해져 사용되는 격언 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일에 성실하게 충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종말적 심판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정녕 영적 세계에서도 물질적 세계에서처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분명 나타날 것입니다(삼상 21:3, 4)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30)

 

1) “이 무익한 종”

 

이 말은 쓸모없다는 뜻입니다. 실로 능동적으로는 선한 일에 매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는 주인이 맡긴 일에 소홀히 하는 종은 그 주인에게 아무 쓸모없는 자인 것입니다(눅 17:10). 이처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 외에도 소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께 악한 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바깥 어두운 데로”

 

이 구절은 앞의 21절과 23절에서 착한 종에게 했던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라

는 말과 반대적 개념으로, 여기서 '바깥 어두운 데'는 주인과 영영한 관계 단절을 암시하는 동시에 어둠의 세력인 사단이 거할 최종적 심판 장소 또는 지옥은 아니고 진주 문 성 밖이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3)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지옥과 유사한 장소에서 드러난 감정일 수도 있고, 또 휴거 되지 못하고 성 밖에 머무르게 되어 나올 수 있는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