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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강해

디모데전서 2장 1-8절: 기도에 대한 가르침

by 보석상자 2022. 7. 3.

기도에 대한 가르침(딤전 2: 1-8)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1)

 

바울이 첫 번째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기도에 어떤 사람을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본절에서 바울은 기도의 대상을 '모든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기도의 대상을 생각함에 있어 인간의 관습과 제도를 초월해야 함을 시사한다.

 

둘째, '기도'는 일반적인 의미로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한 아룀'을 뜻한다.

 

셋째 '도고'의 원어상 의미는 '접근', '인터뷰', '사회적 교제'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나 본 구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간구하는 '중보기도'를 가리킨다.

 

넷째, '감사'는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뜻한다.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2)

 

1)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본 구절은 기도의 대상으로 특별히 권세자들을 포함할 것을 지시한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권세자들을 두시고 그들을 주관하시기 때문에(롬 13:1) 그들이 아무리 합당치 못한 통치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한다.

 

2)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는 나라의 안녕과 사회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사회가 평안한 상태로 나아갈 때 그리스도인들도 안정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은 전쟁과 근심이 없는 생활을 말한다. 그리고 '경건‘과 '단정'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심과 고상한 품성 및 도덕적인 덕행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통치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해야 한다.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3)

 

본 구절은 권세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임을 말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응답하여 주신다(요일 5:14).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4)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본 구절은 17세기 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 주의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논쟁의 주요 쟁점이다.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본 구절을 두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 구원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타당치 않다.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예비 되었지만 그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만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칼빈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실은 '구원을 받으며'가 수동형으로서 구원의 주체는 오직 '우리 구주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일 때 구원을 얻는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에서 지지를 받는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본절을 통해 어떤 계층이나 종족의 특성 때문에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음을 말하는 것이지 개별적으로 모든 인간이 구원 받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2)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진리에 대한 지식은 구원의 중심이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자의적인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획득된다(마16:17; 딤후 2:25).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5)

 

1)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바울이 이처럼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며,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2)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는 원래 '화친이나 계약을 맺기 위해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로 인해 깨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시다.

 

바울 사도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사람이신'이라는 말을 부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성을 소유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셨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6)

 

1)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바울은 본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속전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속전'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값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지만, 그의 속전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죄의 멍에로부터 풀려나게 된다(롬 10:10-13).

 

2)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르러 일어났다. `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7)

 

1)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이를 위하여'라 함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친히 자신을 속전으로 내어주신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6절). '전파하는 자' 이 단어는 원래 공식 통신문을 배달하거나, 공공문서를 전달하고 기타 여러 가지 의무를 이행하는 배달인 또는 사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용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선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가리킨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고 이 일을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쳤다(행 9:15 ; 20:24).

 

2)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바울이 복음 선포에 대한 그의 직무의 진정성을 이처럼 강력하게 밝히는 것은 1:3, 19, 20에서 시사되듯이 에베소 교인들 중에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이 그의 사도적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3)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바울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의 스승이 된 것'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과 동격을 이룬다. 특별히 바울의 사도직이 많은 도전을 받은 이유는 사도란 예수의 공생애 기간 중 그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그 본 것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 직분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된 것임을 강조하여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나 디모데의 권위에 대한 의심을 없애고자 했다.

 

실제로 바울은 헬라 학문의 3대 중심지 중의 하나였던 다소에서 출생하여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빌 3:5)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양육과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적절한 배경 하에서 예수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사명을 받은 자였다(행 26:15-18).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8)

 

본절에서 부터는 공중 예배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지켜야 할 규율을 다루고 있다. '원하노라'는 바울의 강한 소원이며, 또한 명령의 의미를 내포한다.

 

바울은 먼저 남자들이 교회 내에서 서로 화목한 상태에서 기도할 것을 엄격히 명하고 있다. 특별히 바울 사도가 '분노와 다툼이 없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유대인들은 여전히 선민의식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것을 배척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이러한 분쟁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교인들 가운데서 종식되어야 했다.

 

한편 본 구절에는 기도의 자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성경에 기록된 일반적인 기도의 자세는 서서 손을 들고 손바닥은 위로 향하여 펴는 것이었다(출9:29; 왕상 8:22; 시 63:4; 눅18:11).

 

그러나 본 구절에서 바울이 의도하는 기도의 자세가 꼭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와 다툼이 없는 손'이다. 범죄를 하고 나서 더럽혀진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손을 든다면 하나님께서 돌아서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는 몸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태도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