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강해

로마서 2장 13-16절: 심판하시는 그 날

by 보석상자 2022. 7. 9.

심판하시는 그 날 (롬 2:13-16)

 

1.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13)

 

1) “율법을”

 

'율법'은 12절의 '율법'과 같은 것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뜻한다.

 

2)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익히 배우고 들어서 잘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자랑거리다. 그렇지만 이 지식은 그들을 심판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없다.

 

율법을 들었으면 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율법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친다(레 18:5;신 4:1).

 

그러나 본 구절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죄인(3:23)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논리를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3)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유대인들은 단지 자신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롭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달랐다.

 

글자 그대로 보면 '의롭게 된다'는 것이 율법을 행하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에 의하여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14)

 

1)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본성(nature)을 따라 부분적으로 행할 수 있을지 모르나 완전히 행할 수는 없으므로 이방인 역시 죄인일 수밖에 없다.

 

간혹 이방인도 율법의 행위를 수행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바울이 전개하는 논리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다.

 

비록 본절이나 앞절(13절)에서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였지만 계속되는 바울의 논리는 어느 누구도 율법의 요구대로 완전히 순종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3:9, 19).

 

무엇보다도 본 구절은 율법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받은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방인들도 양심의 법칙을 따라 율법이 요구하는 바 행위를 할 때가 있음을 가르침으로써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있다.

 

2)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인간은 그 본성에 심어진 양심과 생각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에 직면하게 된다. 즉 인간들의 본성 속에 존재하는 도덕적 성향은 하나님의 일반적 계시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서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양심의 소리를 수반한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율법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본래적인 양심의 법을 따라 일반 계시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시를 유비적으로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은 궁극적인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방인이 갖는 양심의 법은 간혹 모세 율법과 비슷한 법과 규례를 가질 수 있으나, 율법의 궁극적인 의미에는 전혀 도달할 수 없다.

 

3.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15)

 

1)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양심'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함께 안다'라는 의미로서 본 구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연대적으로 증거 하므로 율법처럼 증인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양심은 인간이 마음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살피면서 때로는 자신을 정죄하기도 하며, 율법과 일치한 행동에 대하여는 스스로 선한 증거로 인정하기도 하는 인간의 '바른 인식의 주체'인 것이다(고전 8:7-12).

 

2)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갈등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사람이 어떤 잘못을 범했을 때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한쪽에서는 그것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러한 갈등이 반복되는 상태가 모든 사람의 내부에 존재한다. 이것이 곧 인간의 양심에 새겨져 있는 율법적인 요소인 것이다.

 

3) “율법의 행위”

 

율법에 따르는 행위로 해석되기 보다는 율법적인 요소가 인간의 양심 가운데 활동하며 그것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통해 양심의 갈등을 느낀 후에 이전보다 나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8.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16)

 

1)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본 구절은 문자적으로 '내 복음을 따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전파한 복음을 근거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바울은 '내 복음'이란 표현을 취했는데, 이것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어 '이신칭의'의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파한 모든 내용을 가리킨다.

 

한편 바울은 '내 복음'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복음'의 출처가 자기 자신인 것처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 자신이 예수께로부터 사도로 세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인식을 드러내 주며 자기가 그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부르심에 대해 전인격적으로 반응한다는 뜻에서 복음을 자신의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자(요 5:27;행 17:31)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이 성취되어 인간들에게 주어졌듯이 그 복음으로 인한 심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행되는 것이 정당한 절차일 것이다.

 

3)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심판 날에는 감추인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드러나게 될 터인데, 사람들 앞에서는 선하게 행동하고 선한 말을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에 외식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심판 날에 남김없이 드러내실 것이다(마 12:36,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