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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강해

요한계시록 3장 1-6: 사데 교회

by 보석상자 2022. 5. 18.

사데 교회 (계 3:1-6)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서머나 교회가 죽도록 충성한 교회,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가 발람의 교훈과 이세벨의 교훈으로 상징되는 이단을 용납한 타협한 교회 혹은 타락한 교회라면, 아시아 7 교회들 가운데 5번째 교회인 사데 교회는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라는 책망을 들은 죽은 교회입니다.

 

이제는 사데 교회가 어떤 의미에서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받게 되었는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 강해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데는 두아디라 남동 약 48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현재 터키인 루디아의 수도입니다.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난공 불락의 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상당히 안일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사데 사람들은 그 안일함으로 인해 두 번 정복을 당하였습니다. B.C. 6세기 고레스의 공격과 약 200년 후 안티 오쿠의 침략이 그것입니다. 종교적으로 황제 숭배가 극심하였습니다.

 

한편 사데 교회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요한의 전도로 세워졌고 2세기에 이르러 변증 가며 주석가로 유명했던 밀리토가 이 교회의 감독이 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로 말미암아 내적인 피폐로 안일과 부도덕의 모습이 교회에까지 침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본문은 사데 교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키며(1:4,16,20), '일곱 별'은 교회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천사를 가리킨다 한편 '가진'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천사의 역할을 주관하심을 시사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하시는 주된 일은 내적인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원을 확증케 하는 일입니다(요14:16).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부여하고 살리시는 성령과 교회를 지키는 천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제로는 '죽었다'는 선언을 받은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죽은 사데 교회를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는 소수의 사데 교인을 지키고 계심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의 '행위'가 사데 교회의 과거 업적을 말하는지 아니면 과거의 명성만 주장한 채 현재는 생명을 상실한 모습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다음 절에서 '온전한 것이 없다'는 선언으로 보아 후자가 타당한 듯합니다. 실지로 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교적 문화나 주변 환경과 타합함으로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데 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한 사실을 단적으로 묘사한 '죽었다'는 표현은 사데에서 약 11km 떨어진 언덕같은 수많은 묘지를 암시한다. 이러한 표현이 종종 전통만을 고집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사데 교회가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으나 신령한 모습은 상실했음을 강하게 부각합니다.

 

다음은 2절 말씀입니다.

 

사데 지역이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로 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안일에 빠져 두 번씩이나 점령을 당했던 사데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일깨워'라는 권면을 사데 교회에 하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함과(3절) 동시에 사데 교회가 비록 죽음 직전에 있으나 완전한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죽게 된 것을' 이 말은 사데 교회가 부분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한편 '굳게 하라'는 말씀은 아직 남아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이 말씀은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함이라기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온전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사데 교회가 외적으로 보기에 풍성하며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시기에 허망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3절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본문은 사데 교회를 향한 세 가지 명령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선 “생각하고”이 말은 '항상 상태를 되돌아보라'는 뜻입니다(12:5). 둘째, “지키어” 이 말은 이미 받았고 들었던 복음을 굳게 붙잡아야 함을 설명합니다. 셋째 “회개하라” 이 말은 단번에 결정적으로 죄에서 돌이킬 것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단회적이며 시급한 돌이킴에 대한 명령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심판을 내다보며 죄로 부패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음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했습니다.

 

본문은 마 24:34와 살전 5:2를 반영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권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죄 속에 머물러 생명력을 상실한다면 마치 도적이 밤에 들이닥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예기치 못할 때에 오셔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4절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본문 말씀은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나 그 가운데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에 대한 해석은 구원받은 자가 사회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는 기독교적 성결로 해석합니다.

 

당시의 사데 교회가 처한 입장은 단순히 도덕적인 타락이나 성적인 범죄와 같은 일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내적이고 기독교적인 문제였으며, '옷이 더럽다'는 것은 기독교적 순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8:7; 고후 11:2; 유 1:23).

 

이러한 옷에 대한 예는 양모 산업이 발달하여 옷에 대해 관심이 많던 사데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기다리니”

 

이 말씀에서 '흰 옷'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의'를 의미하며, 더불어 '죄나 이교도적인 혼합에서 분리시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데 교회의 교인들은 외적인 겉모습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 정결과 이교와의 분리된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함께 다니리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그와 함께 교제함을 표현하는 것으로(창 5:22; 요:6,7) 단순히 현재적인 교제는 물론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교제를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입니다.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합당한'은 종말에 있게 될 심판의 기준에 타당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2:7,17,27,28)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리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음 5절입니다.

 

본절은 사데 교인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가지 약속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첫째,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사데 교회의 경우 다른 소아시아의 교회와는 달리 외적 핍박이나 특별한 이단 그리고 신비주의가 언급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문맥과 사데 교회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세상의 부패나 타협, 안일함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한편 승리자에게 주어질 첫 번째 약속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인데, 이 '흰 옷을 입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희게 되었으며(7:14)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의, 영광을 닮아(18절; 6:11; 7:9,13; 19:14) 하나님 나라에게의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 받음을 시사합니다.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생명 책'은 신, 구약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13:8; 17:8; 20:12,15; 21:27; 출 32:32; 시 69:28; 눅10:20; 빌4:3).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시민권을 소유한 자들을 의미하였으며(출32:32,33), 신약성경에서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여 그리스도의 피로 의로워진 자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13:8; 17:8; 20:12,15; 21:27; 눅10:20; 빌 4:3, Rosh).

 

그리스도께서 승리자에게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라고 약속하신 것은 승리자를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롬 8:38,39)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께 의존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시민권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본문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세 번째 약속으로 마 10:32를 반영합니다(막 8:38; 눅9:26; 12:8). 이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공적으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시인하리라'는 원어상 해석으로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자신을 의지하여 승리한 자들의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증언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확인하실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6절에 와서 결론적으로 경고의 말씀을 주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의 믿음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믿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 배도의 길을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주의 공중 강림 사건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믿음의 정절을 지킴으로 주님 앞에서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